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4차 중동전쟁 (문단 편집) === 정전 직전의 미소 핵대치 === || [navertv(43928506)] || || '''[다큐] 되살아나는 악몽 - 1973년 알려지지 않은 핵전쟁 위기 (2019)'''[*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제목에서 말하는 핵전쟁 위기는 [[제4차 중동전쟁]]이다.] || || {{{#!wiki style="text-align: justify; text-justify: distribute; word-break: keep-all" 개전 초기 궁지에 몰리게 된 이스라엘은 자국의 핵미사일 [[제리코(동음이의어)#s-3|제리코 1]]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이집트 또한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핵탄두가 탑재가능한 [[스커드]] 미사일 B형으로 반격할 준비를 해 [[핵전쟁]]으로 확전될 양상을 보인 무시무시한 전쟁이었다. 게다가 양측을 지원했던 미국의 [[닉슨]]과 [[키신저]], 소련의 [[브레즈네프]]와 각료들은 서로의 잘못된 판단과 [[오해]]가 쌓여 이스라엘과 이집트뿐만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[[초강대국]]간의 전면 핵전쟁 직전의 상태까지 갈뻔 했다. 이는 1962년 [[쿠바 미사일 위기]] 이후 최대의 전면 핵전쟁 위기였던 것이다.}}} || 위 다큐멘터리의 내용대로 24일 밤-25일 새벽 사이 브레즈네프의 일방적 [[파병]] 위협, 백악관의 [[데프콘|데프콘 3]] 발령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번진 것은 사실이다. 그러나 [[다큐멘터리]]에서 주요 증거로 제시한 소련의 핵물질 운반 관련 보고는 26일에 처음 들어왔기 때문에 데프콘 3 발령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. 또한 소련이 이집트에 핵무기를 제공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높지 않은데, 세 가지 이유에서다. 1. [[소련 해군]]의 [[지중해]]상 핵물질 운반은 빈번히 있었으며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. 2. 소련이 아예 실전 사용을 작정하고 핵무기를 옮겼다면, 미국이 시퍼렇게 눈 뜨고 감시중인 [[보스포루스 해협]]을 통과시키지 않고 비밀리에 항공수송했을 것이다. 3. 핵무기에 극도로 민감한 소련이 공산권도 최우방도 아니며, 심지어 전쟁 중인 제3국에 핵무기를 넘겨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. 그나마 비슷했던 [[쿠바 미사일 위기]] 때도 핵무기의 통제권은 철저히 소련이 가지고 있었다.[* Kumaraswamy, Revisiting the Yom Kippur War] 결론적으로 두 번에 걸친 [[정전]] 시도가 무산되자 위험천만한 미-소 대립 양상으로 치닫긴 했지만, 미국에서 소련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[[데프콘]]이 상향 조정되었다는 주장은 과장에 가깝다. 여러 학자들도 굳이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병력도 소련이 실제로 투입했을 가능성이 적었다고 판단하고 있다. 24-25일의 위기는 [[브레즈네프]]의 과장 섞인 일방적 개입 위협과 극도로 긴장을 탄 키신저의 강경 대응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.[* 당연히 데프콘 상향 결정을 내릴 당시의 [[키신저]]는 소련이 진짜 개입할지는 알 수 없었다.] [[우발적 핵전쟁]] 문서에도 나와있듯, 그 이후 사소한 오해나 경솔한 행동이 누적되어 핵전쟁이 발발했을 위험은 충분하지만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